"희망 나누는 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죠"
                                          배현정 기자
 
한참 말을 배워서 이야기할 나이의 다섯 살배기 유치원 아이가 행사장을 찾았다. 손을 잡고 들어오는 아빠도, 엄마도, 아이도 서로 바라만 볼 뿐 말이 없다. 세 가족은 모두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FN의 최귀옥 상무는 그래서 가슴을 쳤다. "소리를 들어봤어야 아이가 말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이가 청력 측정을 시작하자 모두가 잔뜩 긴장하며 바라봤다. "소리가 들리는 대로 따라 해 봐. "아 -, 어-, 오-, 우-, 엄마-, 아빠-"
엄마가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아빠도, 최 상무도,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입니다."

최 상무는 현장에서 겪은 일화를 들어 캠페인의 의의를 전달했다. "한 번 와서 보면 느끼죠. 귀가 열렸을 때의 표정이란 뭐라 말할 수 없어요. 생애 처음 소리를 듣고 기뻐하는 표정을 보노라면 '계속 해야 하는 일이구나' 느끼지요."

아름다운FN은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디지털 보청기를 보급하는 활동을 펴는 곳이다. 2004년, 사회적 소외계층을 돕고 다양한 기부문화의 개발 및 확산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는 분야가 이른바 '소리나눔' 캠페인이다.

2006년 11월, 충북 제천에서 '소리나눔 캠페인' 1차 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750여 명의 청각 장애인들에게 디지털 보청기 제공의 혜택이 돌아갔다.
"금년의 디지털 보청기 보급 목표 인원은 1000명입니다. 기업의 후원이 따른다면 2000명도 가능할 수 있지요. 자부심을 갖죠."

지난해 아름다운FN이 언어장애아동 돕기 캠페인인 '아름다운 소리' 캠페인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이 캠페인은 언어장애아동과 학부모들이 가정에서 함께 교육할 수 있는 컴퓨터용 치료프로그램을 보급하는 사업. 그런데 뜻밖에도 보청기 회사와 연결이 됐다.

"아마 '소리'라는 공통점 때문이었나 봐요. 언어장애아동 돕기를 하는데 보청기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들리지 않으면, 말을 할 수도 없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청기 나눔 운동을 함께 전개하자고 하더군요."

우선 누구에게 보급할 것인지 대상을 정해야 했다. 지역민들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전국 지자체와 사회복지기관과 협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설득이 쉽지 않았다. 지자체에 사업 제안을 하고 행사를 열기까지 꼬박 5개월이 넘게 걸렸다.

보청기에 대한 인식이 나쁜 게 걸림돌이었다. "보청기를 착용하는 것을 '장애'를 티 내는 것 같아 꺼려하는 경우가 많았고, 보청기를 착용해봤자 소리는 잘 안들고 머리만 아프다는 편견이 심했죠. " 아닌 게 아니라 과거의 아날로그 보청기 들은 청력 보정 효과에 비해 두통을 유발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디지털 및 의료산업이 발달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제품들의 기능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간 진행한 보청기 나눔 행사에 참가한 750여 명 중 '귀'를 열게 하는 데 실패한 경우는 1~2%에 불과했습니다. 안될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포기하지 말고 한 번 체험이라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간혹 최 상무의 이러한 보청기 나눔 운동에 대한 열의는 엉뚱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장사꾼이 아닐까 의심하죠. 또 나눔 운동이라고 하면서 ' 싼 걸 싸게 주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세간의 말에는 크게 게의치 않는다."반신반의하다가도 현장에서 직접 보청기를 써보고는 다들 좋아하는 걸요." 신념 때문인지 어느새 '보청기' 전도사가 다 된 듯 했다.

현재 아름다운FN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는 최 상무를 비롯하여 5명. 모두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벤처기업 등에서 일하며 1주일에 2~3회씩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벤처기업 '노 애드'(www.no-ad.co.kr)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 상무 역시 본래 금융계 출신.

시작 동기는 단순했다. "지인 중에 '아름다운재단' 박원순 대표와 친구가 있어요. 그런 인연으로 아름다운재단 '서포터즈'를 맡게 됐죠."

금융계 출신답게 기부 활성화를 위한 첫 아이디어로 '아름다운 보험'을 제안했다. "아름다운 보험은 살아있는 동안 보험금을 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재단을 통해 불우한 누군가에게 그 혜택을 주는 보험이에요. 사후(死後)에 불우이웃돕기를 실천하는 셈이죠."

기업 중심의 일회적인 현금 기부에만 치우쳐 있는 국내의 기부문화를 바꿔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현행 보험법상, 아름다운재단 같은 비영리공익재단은 보험 사업을 할 수가 없더군요." 고심 끝에, 뜻을 합친 친구 5명이 의기투합해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익을 추구하는 '사회적인 기업(Social Enterprise)'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2004년 12월, 아름다운재단, 교보생명과 손잡고 '아름다운보험'을 출범시켰다. 이후 공연 및 영화 등 문화나눔 운동 전개를 비롯해, 지난해 언어장애아동 돕기 캠페인인 '아름다운 소리' 캠페인을 벌이게 됐고, 이것이 다시 보청기 나눔 운동으로 이어지게 됐다.

최근에는 또 한 번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사업 확산을 위해 사단법인 (가칭) 소리나눔 설립을 한창 추진 중이다. "아름다운FN은 '사회적인 기업'을 지향하지만 법적으로는 이를 인정 받지 못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노동부에서 인정하는 사회적 기업은 장애인을 고용했거나 장애인용품을 생산하는 기업 등에 국한되기 때문이죠. 더 적극적으로 사회 공익을 추구하려면 현 제도 하에서는 사단법인이 되야 하겠더라고요."

부득이하게 '하나의 바람직한 기업 모델'이 되고 싶었던 사회적 기업을 포기한 것은 이 때문이다. 대신 "기업 참여 통로를 확대해 더 많은 이들에게 보청기 나눔의 혜택이 돌아갔으면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장애인을 돕는 많은 사업 중 유독 디지털 보청기 보급 사업에 매진하게 됐을까. "청각언어 장애인들은 여러 영역의 장애인들 중에서도 소외돼 있습니다. 안 들리고, 말을 못하면 자연히 자기 주장을 잘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인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는 일단 사단법인이 설립되면 할일이 무궁무진할 것 같다고 했다. 언어 교육프로그램을 보급시키겠다는 계획은 이미 서 있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소리나눔' 운동이 확산될지 기대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더불어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세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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