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오후 경기 이천시 이천시민회관. 퇴근 후 서둘러 아름다운FN의 '소리나눔 캠페인' 현장을 찾은 김태형(40) 씨는 (수화를 통해) 생애 처음 듣고 싶은 소리로 누나의 목소리를 꼽았다.
청력 검사 결과, 왼쪽 귀의 청력은 완전히 손실됐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오른쪽 귀의 청력은 미약하게마나 살아있는 것으로 판정됐다.
세 살 때 열병으로 청력을 잃은 뒤에는 소리 듣기를 포기하고 살았던 세월이 무려 37년. 보청기 제작을 위해 검사를 받으면서도 표정은 그저 담담했다.
하지만 보청기를 통해 너무도 오랜만에 시원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얼굴 표정은 금새 아이처럼 환해진다. "너무 소리를 안 들어 영영 못 들을 줄 알았는데 꿈만 같아요."
전화기를 통해 누나에게 신호가 가자,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기에 이르렀다. "누--나--!"
태형 씨의 어눌한 말이 떨어지자, 전화기 너머로 감정이 북받친 듯한 누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아직 미혼인 태형 씨에겐 엄마와 같은 존재였던 누나는, 더 이상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태형 씨도 아쉬운 표정으로 누나의 짧은 대화를 끝낸 후 "누나 목소리는 예쁜데,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앞으로는 말을 배워볼 생각"이라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은 소감을 전했다.
아름다운FN이 주관하는 이 '소리나눔' 캠페인은 청력 손실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고가의 디지털 보청기를 나눠주는 캠페인. 이날 캠페인에는 이천시에 거주하는 청각장애인 40명이 참여해 귀한 보청기 선물을 받았다.
참가자들의 현황을 보니, 나이는 20~80대. 청력손실로 말 또한 익히지 못해 모두가 청각언어장애 1,2급에 속했다. 이천시에 거주하는 청각장애인의 경우 인근에 공장이 많아 여느 청각장애인들에 비해 직장에 다니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그만큼 위험에 노출된 경우도 많았다.
산소 고압 용기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태형 씨 역시 공장 내에서 지게 차 등이 지나갈 때 '빵' 하고 비키라는 신호를 듣지 못해 사고를 당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고 고백했다.
어린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의 경우 '아이 울음' 소리를 듣지 못해 애태우던 날들이 많았다고 고충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날 행사장에 갓난 아기를 업고 온 L(28)씨는 아이 양육 문제 때문에 (역시 청각장애인인) 남편과 함께 보청기를 사느라 빚까지 졌었는데 이번에 보청기를 제공받게 돼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 참가자를 선별하고, 선정된 청각장애인들과 문자 메시지를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성공적인 행사 진행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던 이천시 수화통역센터 정태동 실장도 "그간 소리란 걸 모르고 살아오던 청각장애인들이 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하는 걸 보니 마음이 뿌듯하다"며 "이번에는 시범적 차원에서 40명에 한정해 행사를 진행했지만, 차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캠페인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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